창녕성씨의 연원
창녕 성씨의 연원
우리 창녕 성씨의 시조는 고려 때 호장(戶長) 중윤을 지낸 인보(仁輔)이시다.
「조선씨족통보 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그의 부친은 신라 때 대관(大官)인 성저(成貯)의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성씨약사 成氏略史」에는 시조 인보께서 고려 문종 때 우리 성씨를 처음 만든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족보 외 문헌사료에도 시조는 인보로서 윗계보는 밝혀지지 않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니 이것이 우리 성씨의 유래이다.
「국조문헌」에는 주(周)나라 문왕의 일곱째 아들인 성(?)나라 숙무(叔武)의 후손들이 나라이름을 따서 성씨(?氏)로 삼았는데 뒤에 초나라에게 멸망되자 ?을 떼고 성씨(成氏)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승인문학원」에는 당나라 때 학사(學士)로 상곡(上谷) 출신인 성경이 있었는데 동쪽에 있는 조선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우리 역사기록에 성씨로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기원전 108년 북부여의 번조선 과 한나라와의 전쟁 때 번조선의 신하 5명이 작당해 우거 왕을 죽이고 한나라에 항복할 때 끝까지 나라를 지키다가 암살당한 성이(成已) 장군이 있다. 그 후 백제에는 의자왕 때 충신성충(成忠)이 있었으며, 신라 때에는 성저(成貯)가 등장하나 시조 인보와의 연관성은 알수가 없다. 그리고 고려 때 중윤호장 숙창(中尹戶長 淑昌)이란 분이 시조 인보(仁輔)를 낳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