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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녕성씨 시조 중윤공 성인보의 사위가 송초성[訟硝盛]
작성자 성범모 [2018-10-18 16:41:11]
이메일 sbm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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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녕성씨 시조 중윤공 성인보의 사위가 송초성[訟硝盛]이다. 

 

-- 강릉성씨의 시조 성척[成戚]은 원래 예빈경을 지내신 송흔적[訟昕迪]6대손으로 본성은 송[]씨였으나 고려 목종의 이름이 송[]이었으므로 그의 할머니 성인 성씨(成氏)로 고치게 했다. 목종의 이름이 바로 송()이어서 임금의 이름을 임금 이외사람은 쓰지 못하게하는 동양 전제왕권의 관례에 따라 성척은 성씨를 바꿔야 했다그의 할아버지인 송초성[訟硝盛]가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의 사위임으로 그의 할어머니 성을 따라 개성[改姓]한 것이다. 강릉성씨 을축보에 기록이 있으며, 창녕성씨 족보에는 기록이 없다.--

 

만약  위 기록이 사실이라면 족보상 표기도

 

성인보(1세)

자- 성송국(2세)

여- 송초성(사위)

 

 

 

--------<이하 근거 자료. >---------

강릉성씨의 유래

 

**[출처 1.] daum...>강릉성씨의 유래.... Auror Astronomy, 2011.2.25

 

시조 성척[成戚]은 원래 예빈경을 지내신 송흔적[訟昕迪]6대손으로 본성은 송[]씨였으나 고려 목종의 이름이 송[]이었으므로 그의 할머니 성인 성씨(成氏)로 고치게 했다. 목종의 이름이 바로 송()이어서 임금의 이름을 임금 이외사람은 쓰지 못하게하는 동양 전제왕권의 관례에 따라 성척은 성씨를 바꿔야 했다

그의 할아버지인 송초성[訟硝盛]가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의 사위임으로 그의 할어머니 성을 따라 개성[改姓]한 것이다. 강릉성씨 을축보에 기록이 있으며, 창녕성씨 족보에는 기록이 없다.

강릉성씨는 일찍이 관향인 강릉에 터를 잡아 누대에 걸쳐 세거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강릉성씨 을축보"에 의하면,3세 의권(成誼權) 이후에 지금의 강원도 고성를 세거지로 삼고 있으며5세 성자화(成自和)가 삼척에서 살았던 사실이 나타나 있으므로 이 무렵부터 일부 자손들이 이들 지역에 옮겨가 정착하였다.

 

7세 성선(成善)이 선대(先代)에 드물게 사행사경사영 , 사윤사웅 등4형제를 두었고 이들 형제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모두들 부러워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벼슬길에 나서 모처럼 가문의 번성을 꾀하였으나 갑자사화로 인하여 강릉성씨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후 많은 자손들이 창녕성씨로 흡수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강릉성씨는 옛부터 자손이 귀해 지금도 그 수가 많지 않으며, 특히 갑자사화를 겪으며 후인들이 창녕성씨로 살아가게 된 경우가 많이 있었다. 십 수년전 그 문제에 관해 심각한 논의가 있었으나 이미 여러 세대를 창녕성씨로 살아오던 후손들에게 족보를 수정하라고 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고, 또 자신들의 진정한 뿌리는 강릉성씨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세인들 중에는 이런 내력을 알지 못하고 강릉성씨를 창녕성씨의 한 지파(支派)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출처 2. ]  naver..> 강릉성씨 -- 위키백과

 

강릉 성씨(江陵 成氏)

관향 - 강원도 강릉시

시조 -성척 (成戚)

인구(2000) -3,305

 

강릉 성씨(江陵 成氏)는 강원도 강릉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성척(成戚)은 예빈경을 지낸 송흔적(訟昕迪)6대손으로 본성은 송()씨였으나 고려 목종의 휘인 송() 자를 피하여, 그의 할머니 성인 성()씨로 고쳤다고 한다.

역사[편집]

강릉 성씨(江陵 成氏) 시조 성척(成戚)은 예빈경을 지낸 송흔적(訟昕迪)6대손으로 본성은 송()씨였으나 고려 목종의 휘인 송() 자를 피하여, 그의 할머니 성인 성()씨로 고쳤다고 한다. 그의 할아버지인 송초성(訟硝盛)이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의 사위임으로 그의 할머니 성을 따라 개성(改姓)한 것이라고, 강릉 성씨 을축보에 기록이 있으나, 창녕 성씨 족보에는 기록이 없다. 강릉 성씨는 일찍이 관향인 강릉에 터를 잡아 누대에 걸쳐 세거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강릉성씨 을축보"에 의하면, 3세 성의권(成誼權) 이후에 지금의 강원도 고성을 세거지로 삼고 있으며5세 성자화(成自和)가 삼척에서 살았다고 한다.

7세 성선(成善)이 사행사경사영, 사윤사웅 등 4형제를 두었는데, 갑자사화 때 강릉 성씨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후 많은 자손들이 창녕 성씨로 흡수되는 비운을 겪었다고 한다.

*인구[편집]--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061가구, 3,305명으로 조사되었다.

 

 

 

성** 2018-10-18 20:58:23
위 기사에 대해 종원님들의 많은 검증이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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